<언론스크랩>광주리 할머니, 영원한 장학금
페이지 정보

본문
고 최은순씨 11년전 전재산 전북대 기탁, 매년 1,400만원 지급 숭고한 뜻 이어져....
전북대 학생 9명과 고영호 전 사대학장 등 '최사모'회원, 조승현 발전지원부처장 등 일행이 지난 8일 오전 모악산 대원사를 찾았다.
이들이 대원사를 찾는 것은 광주리 행상으로 모은 재산 전부를 아낌없이 주고 간 '광주리 할머니'의 따뜻한 인연을 소중하게 간진하고 이어가기 위해서다.
11년전인 지난 1997년 최은순 할머니는 생전에 광주리 행상과 삯바느질을 하며 푼푼이 모은 1억원과 이듬해 작고 후 유산을 전북대학교 기탁했다.
고 최은순 할머니는 생전에 완주 중인동 추동마을 인근 시장에 쭈그려 앉거나 돌아다니면서 종일 채소를 팔았다. 광주리에 담긴 푸성귀는 최 할머니의 장사 밑천이자 수입 그 자체였다. 또 채소가 나지 않을 때나 바느질 거리가 생길 때면 삯바느질을 하기도 하는 등 남편도, 자식도 없는 할머니에게 돈벌이는 수단이자 목적이 되었다.
그러던 최 할머니는 1997년 3월 전북대를 찾는다.
당시 장명수 전북대 총장을 찾은 최 할머니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1억원을 기탁하게 된다.
장 총장은 "할머니가 주신 1억원을 10억원으로 알고 받겠습니다"라고 최할머니의 기막힌 삶과 고귀한 뜻을 높이 샀다.
그 이듬해 11월 말 할머니는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전북대에 또 하나의 선물을 안긴다. 동산과 부동산을 모두 전북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하겠다는 뜻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산은 법정까지 가는 공방 끝에 부동산은 조카에게 돌아가고 현금 2억 9천여만원은 장학금으로 남게 된다.
'최은순 장학금' 기금은 모두 3억 9천만원으로 늘게 돼 학기마다 10명에게 70만원씩 지급하고 1년이면 1천 4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종자돈이 됐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전북대 직원과 학생 9명이 최 할머니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최사모'를 만들었으며, 전북대는 최 할머니의 숭고한 뜻에 보답하기 위해 장례는 물론 매년 10월 11일(음력)이면 대원사를 찾아 제를 지내고 김제시 성덕면 묘소를 찾는다.
이날도 오전 11시경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과 당시 학생 부처장이었던 고영호 전 사대학장, 당시 교직원이었던 이연은 선생님 등 '최사모'회원들이 오전 1시경 대원사를 찾아 추도예불을 드리고, 오후엔 김제 성덕 묘소를 찾아 돌보고 할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최 할머니 묘소를 찾은 김태운(법학 03)학생은 "그 동안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어떤 분인지 잘 몰랐는데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이렇게 찾아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마음을 전했다.
'최사모'이연은씨는 "최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지금도 생각난다"면서 "혈혈단신이셨던 할머니의 사회에 대한 아름다운 마음을 계속 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조승현 발전지원부처장은 "나눔의 의미와 사랑을 보여 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매년 제사를 모시는 것에서 우리는 오히려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배운다"면서 " 그 숭고한 뜻을 잊지 않고 아름다운 만남을 꾸준히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당신의 질곡의 시간만큼이나 어렵게 공부하고 있는 학생을 위해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지 않은 장학금을 내놓았던 고 최은순 할머니의 숭고한 뜻이 현재까지 할머니의 고운 얼굴만큼이나 곱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북도민일보/ 2008-11-10/ 소인섭기자
전북대 학생 9명과 고영호 전 사대학장 등 '최사모'회원, 조승현 발전지원부처장 등 일행이 지난 8일 오전 모악산 대원사를 찾았다.
이들이 대원사를 찾는 것은 광주리 행상으로 모은 재산 전부를 아낌없이 주고 간 '광주리 할머니'의 따뜻한 인연을 소중하게 간진하고 이어가기 위해서다.
11년전인 지난 1997년 최은순 할머니는 생전에 광주리 행상과 삯바느질을 하며 푼푼이 모은 1억원과 이듬해 작고 후 유산을 전북대학교 기탁했다.
고 최은순 할머니는 생전에 완주 중인동 추동마을 인근 시장에 쭈그려 앉거나 돌아다니면서 종일 채소를 팔았다. 광주리에 담긴 푸성귀는 최 할머니의 장사 밑천이자 수입 그 자체였다. 또 채소가 나지 않을 때나 바느질 거리가 생길 때면 삯바느질을 하기도 하는 등 남편도, 자식도 없는 할머니에게 돈벌이는 수단이자 목적이 되었다.
그러던 최 할머니는 1997년 3월 전북대를 찾는다.
당시 장명수 전북대 총장을 찾은 최 할머니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1억원을 기탁하게 된다.
장 총장은 "할머니가 주신 1억원을 10억원으로 알고 받겠습니다"라고 최할머니의 기막힌 삶과 고귀한 뜻을 높이 샀다.
그 이듬해 11월 말 할머니는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전북대에 또 하나의 선물을 안긴다. 동산과 부동산을 모두 전북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하겠다는 뜻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산은 법정까지 가는 공방 끝에 부동산은 조카에게 돌아가고 현금 2억 9천여만원은 장학금으로 남게 된다.
'최은순 장학금' 기금은 모두 3억 9천만원으로 늘게 돼 학기마다 10명에게 70만원씩 지급하고 1년이면 1천 4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종자돈이 됐다.
당시 업무를 담당했던 전북대 직원과 학생 9명이 최 할머니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최사모'를 만들었으며, 전북대는 최 할머니의 숭고한 뜻에 보답하기 위해 장례는 물론 매년 10월 11일(음력)이면 대원사를 찾아 제를 지내고 김제시 성덕면 묘소를 찾는다.
이날도 오전 11시경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과 당시 학생 부처장이었던 고영호 전 사대학장, 당시 교직원이었던 이연은 선생님 등 '최사모'회원들이 오전 1시경 대원사를 찾아 추도예불을 드리고, 오후엔 김제 성덕 묘소를 찾아 돌보고 할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했다.
최 할머니 묘소를 찾은 김태운(법학 03)학생은 "그 동안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어떤 분인지 잘 몰랐는데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이렇게 찾아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마음을 전했다.
'최사모'이연은씨는 "최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지금도 생각난다"면서 "혈혈단신이셨던 할머니의 사회에 대한 아름다운 마음을 계속 이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조승현 발전지원부처장은 "나눔의 의미와 사랑을 보여 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매년 제사를 모시는 것에서 우리는 오히려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배운다"면서 " 그 숭고한 뜻을 잊지 않고 아름다운 만남을 꾸준히 이어가겠다"라고 밝혔다.
당신의 질곡의 시간만큼이나 어렵게 공부하고 있는 학생을 위해 쓰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적지 않은 장학금을 내놓았던 고 최은순 할머니의 숭고한 뜻이 현재까지 할머니의 고운 얼굴만큼이나 곱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전북도민일보/ 2008-11-10/ 소인섭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